한반도의 가장위 끝부분
두만강을 사이에두고 왼쪽으로 중국의 도문시와 오른쪽으로 북한의 남양시가 보입니다.
저멀리 조중국경을 잇는 다리가보이고 가까이에 철교가 보입니다.
흔히 한국의 관광객들은 저 조중국경 다리까지만 왔다 보고갑니다.
철교오른쪽으로 야트막한 산이보이고 하얗게 보이는 부분이 눈물젖은 두만강 유래비탑이고 그약간위쪽으로
북한의 남양시를 한눈에 내려다볼수있는 정자가 있습니다.
한국사람 누구도찾지않고 관심도없는 눈물젖은두만강에대한 유래비,
6년전 찾았을때보다 더낡고 헤어진모습이 왜이리 내마음을 아련하게하는지,
눈물젖은 두만강의 유래
1919년 조선 (3.1)독립운동의 실패로 수많은 조선동포들은 원한을 품고
살길을찾아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연변)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1930년대부터 도문에는 두만강나루의 착선장이 생겼는데
이곳이 바로 나라잃고 부모처자 생이별하던 원한의 두만강나루터 였다.
1930년가을 북간도(연변) 순회공연차로 도문에 도착한 극단 (예원파) 일행이 투숙한 여관에서 밤중에 만주(동북)땅에서 반일투쟁을하다가 살해당한 남편을 그리며 통곡하는 녀인의 애절한 호곡소리를 듣고 커다란 충격을 받은 작곡가 리시우 선생은 망국의 원한과 민족의 설움을 통탄하면서 (눈물젖은 두만강)을 창작하였다.
도문공연에서 극단의소녀 화술배우 장월성이 이노래를 처음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고 절찬을 받았다. 서울에 돌아간후 시인 김룡호 선생을 찾아 가사를 다듬고 가수김정구선생을 청하여 (OK)레코드에 취입하도록 하였다.그이후부터 이노래가 민간에 급격히 류행하였는데 사람들은 조국이 그리울때도 이노래를 불렀고 떠나간 옛님이 그리울때도 이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연변조선족전통문화연구센터정리